전유성(1949~2025)은 한국 공개 코미디를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로, 흔히 ‘개그계 대부’라 불렸습니다. 그는 단순히 무대에 서는 코미디언을 넘어, 방송 기획자이자 후배 양성자로서 한국 코미디 판을 새롭게 짠 인물입니다.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으며, 1968년 TBC 특채 코미디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습니다. 이듬해 정식 방송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한국식 공개 코미디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름
전유성
출생
1949년, 서울 종로구
학력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연극연출
데뷔
1968년 TBC 특채 코미디 작가
주요 업적
‘유머1번지’, ‘쇼 비디오자키’ 기획 및 출연 / 공개 코미디 대중화
별칭
개그계 대부, 한국 코미디의 산증인
사망
전유성은 2025년 9월 25일 오후 9시 5분, 전북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76세였으며, 사인은 폐기흉 악화로 알려졌습니다.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에 따르면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고 전했습니다.
그의 부고는 주요 언론과 방송사를 통해 긴급히 보도되었으며, 동료 코미디언과 후배들이 연이어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유언 및 마지막 순간
생전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힘.
가족과 지인들에게 마지막까지 평소처럼 유머와 농담을 건넴.
최양락에게 “내가 이제 떠날 준비를 하는데 네가 제일 생각난다”는 말을 남김.
유족에 따르면, 전북 남원 인월면을 장지로 삼아 달라는 뜻을 남겼다고 전해짐.
최양락의 증언
“3일 전 아내 팽현숙 씨와 함께 병원에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형님은 마지막까지도 유머를 잃지 않으셨고, 아픔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끝까지 개그맨으로 살다 가신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개그 콘테스트로 데뷔했는데, 그때부터 45년 동안 형님과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형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개그맨으로 성공도 못 했고, 아내 팽현숙 씨도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2019년 형님의 데뷔 50주년 공연 ‘전유성의 쑈쑈쑈’에도 함께했는데, 그때도 건강이 완벽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폐렴과 코로나 합병증, 더 어릴 적 폐결핵까지 앓으셨다는 이야기를 최근에서야 들었습니다.”
후배 양성 및 업적
‘코미디 시장’을 운영하며 신봉선, 황현희, 박휘순 등 후배를 배출.
KBS 장수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초창기 제작에 깊이 관여하며 공개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음.
2019년 데뷔 50주년 기념 전국 순회 공연 ‘전유성의 쑈쑈쑈’ 개최.
후배 교육과 축제 자문을 통해 차세대 개그맨 양성에 평생 헌신.
정리
전유성은 한국 코미디 역사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는 코미디언이자 기획자로서 방송 구조를 바꾸었고, ‘개그맨’이라는 단어를 대중 속에 뿌리내리게 한 장본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자세**로 삶을 마무리하며, 진정한 예인의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정신은 후배 코미디언들의 무대와 한국 코미디의 미래 속에 계속 살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