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故 이순재, 70년 연기 인생의 마지막 커튼콜
금관문화훈장이 놓인 영정 앞에서, 한 시대를 함께한 국민배우를 조용히 떠올리다.
향년 91세.
연극 무대에서 시작해 드라마·영화·예능까지, 한국 대중문화의 긴 역사를 함께 걸어온 원로배우 故 이순재의 빈소에, 우리나라 문화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이 조용히 놓였다. 작은 훈장 하나에 압축된 세월은 70년, 작품 수로는 100편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영전에 놓인 금관문화훈장, 한 예술가의 인생을 증명하다
정부는 별세 다음 날, 고(故) 이순재에게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문화훈장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국민의 문화 향유에 뚜렷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수여되는 국가 훈장으로, 그중에서도 금관은 가장 높은 등급이다. 이미 생전에도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던 그는, 마지막에 이르러 한국 문화계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다시 한 번 공식 인정받게 됐다.
장례식장을 찾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그를 기억했다. 대본 속 인물로 살다가도 촬영이 끝나면 누구보다 소탈한 선배로 돌아오던 모습이, 장례식장 곳곳에서 조용한 대화로 이어졌다. —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기억에서
금관문화훈장이 영정 옆에 놓인 장면은, 한 예술가의 삶이 단지 ‘오래 일한 배우’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감정과 기억을 함께 빚어온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분단의 시대를 건너 무대로, 철학을 품은 청년의 선택
故 이순재는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전쟁과 분단을 몸소 겪으며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우연처럼, 그러나 어쩌면 필연처럼 예술과 마주했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글이 아닌 ‘무대 위 인물’로 풀어내기로 결심한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그는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극장과 방송국, 촬영장을 오가며 수많은 인물을 자신의 몸과 목소리로 빚어냈다. 당시만 해도 연기는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기 어려웠지만, 그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살아 있는 자신을 느낀다”는 마음 하나로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걸었다.
- ·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 연극 무대에 입문
- · 라디오 드라마, 흑백 TV 드라마를 통해 대중과 첫 만남
- · “연기는 평생 공부”라는 신념으로 연극과 방송을 병행
흑백TV에서 OTT 시대까지, 세대를 잇는 ‘국민배우’
가부장과 이웃, 스승을 오가던 80~90년대의 얼굴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1980~90년대, 이순재는 이미 안방극장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등 당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그는 고집도 세고 표현은 서툴지만, 결국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 아버지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호통치던 장면 뒤, 불 꺼진 세트장에서 후배에게 먼저 다가가 “괜찮았어, 한 번 더 가보자”라고 말해주던 태도는, 현장의 누구에게나 오래 남는 기억이었다고 한다. 드라마 속에서는 무서운 가장이었지만, 현실에서는 후배와 스태프를 챙기는 따뜻한 어른이었다.
사극·현대극·예능을 넘나든 ‘현역’ 원로배우
나이가 들어서도 그는 결코 ‘옛날 배우’가 되지 않았다. 『동의보감』, 『허준』, 『상도』, 『이산』과 같은 사극에서는 묵직한 존재감으로 이야기에 중심을 세웠고,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현대극에서는 젊은 캐릭터들과 부딪히며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예능과 시트콤에서도 그는 연륜에 유머를 더해 새로운 세대와 자연스럽게 소통했다.
140편이 넘는 작품을 오가며 연극·드라마·예능을 모두 경험한 그는, 말 그대로 한국 대중문화의 흐름을 온몸으로 통과한 배우였다. 작품이 바뀌어도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화면 속 어디에 있어도 시선을 단번에 잡아끄는 “존재감 있는 어른”이었단 점이다.
정치와 교육,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예술가
故 이순재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정치 활동과 후학 양성이다. 그는 국회의원을 지내며 문화·예술 관련 제도와 현장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 했고, 여러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며 후배들에게 “기술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많은 제자와 후배들은 그를 “연기론보다 삶의 태도를 먼저 가르쳐 준 스승”이라고 기억한다. 늦은 밤까지 연습실에 남아 배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현장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스태프에게도 늘 이름을 불러 인사하던 모습이 수많은 증언을 통해 전해진다.
- · “연기는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공부다.”
- · “조금 손해 보는 듯 살아도 괜찮다.”
- · “배우는 평생 현장과 관객에게 빚지고 산다.”
91세의 마지막까지, “연기는 제 운명입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무대를 꿈꾸는 ‘현역’이었다. 건강 문제로 연극 무대를 중도에 내려와야 했던 순간에도 “조금 쉬었다가 다시 서겠다”고 말하던 그는, 끝내 복귀를 이루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우리가 TV를 켜고, OTT에서 옛 드라마를 다시 재생하는 순간 그는 여전히 화면 한가운데 서 있다. 호통도 치고, 걱정도 하고, 특유의 단호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다그치다가도 결국 따뜻한 한 마디를 남기곤 한다. 70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수많은 장면으로 기록되어 지금도 우리의 일상 속 ‘재방송’으로 살아 숨 쉰다.
고 이순재. 무대의 불은 꺼졌지만, 그가 남긴 말과 표정, 그리고 삶의 태도는 한국 대중문화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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