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도 사랑도 뜨거웠던 은막의 여왕, 한국 영화사를 쓴 배우 김지미 별세

1960~19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던 원로 영화배우 김지미(본명 김명자)가 미국에서 별세했습니다. 향년 85세. 영화계에 따르면 그는 약 60년 동안 활동하며 공식 기록만 370여 편, 본인이 밝힌 추정치로는 7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그야말로 한 시대의 스크린을 지배한 ‘은막의 여왕’이자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축을 이룬 배우였습니다.
마지막 주연작 연출 이장호 감독 "선택받은 진짜 배우"
배창호 감독 "꾸밈없고 따뜻한 분"…김동호 전 위원장 "韓 영화계에 큰 영향"
🌟 길거리 캐스팅으로 시작된 60년 배우 인생
김지미의 배우 인생은 우연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영화감독 김기영에게 길거리 캐스팅을 당하며 영화계에 입문했습니다. 이후 그는 각종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며 쉴 틈 없이 촬영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1960년대에는 1년에 많게는 34편의 영화를 찍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편의 영화를 돌아가며 촬영하는 이른바 ‘겹치기 촬영’이 일상이었고, 이는 당시 한국 영화계의 제작 환경과 함께 김지미의 폭발적인 인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700편에 가까운 작품, 한국 영화사의 살아 있는 필모그래피
김지미는 공식 집계로만 370여 편,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70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그는 2017년 기자회견에서 “아마 700편 이상에 출연했을 것 같다”며 “700가지 인생을 살았던 만큼, 역할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토지’(1974), ‘육체의 약속’(1975), ‘길소뜸’(1985) 등이 있습니다. ‘토지’에서는 대지주 가문의 안주인 윤씨 역할로 파나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육체의 약속’에서는 사랑에 빠진 죄수 효순 역을 맡아 또 한 번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습니다.
특히 ‘길소뜸’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산가족 아들을 찾아 나서는 중년 여성의 복잡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다시 한 번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완숙한 연기자의 면모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 트로이카 이전, 당대를 압도한 ‘최고의 미녀’이자 원조 팜므파탈
김지미는 윤정희·문희·남정임으로 대표되는 1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 이전부터 활동했습니다. 그럼에도 후배들과 끊임없이 경쟁하며 1980년대까지 꾸준히 활약했습니다.
당시 전형적인 한국 여성 이미지와는 다른, 입체적인 얼굴과 도시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는 영화계와 대중으로부터 “당대 최고의 미녀”로 불렸습니다. 새로운 미인이 등장해도 “그래도 김지미만 못하다”는 말이 따라붙을 만큼 그의 외모는 하나의 기준이었습니다.
트로이카 여배우들이 주로 젊고 풋풋한 매력을 내세웠다면, 김지미는 보다 노련하고 성숙한 여성미로 평가받았습니다. 영화 ‘불나비’(1965)에서는 살인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을 연기하며 도시적이고 치명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이로 인해 그는 ‘영화계 팜므파탈의 원조’라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 “정식으로 배운 적 없어도 자연스러웠던 연기”

김지미는 처음부터 연기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카메라 앞에 서자마자 놀라운 자연스러움을 보여줬고, 이는 감독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와 함께 13편의 작품을 만든 김수용 감독은 “정식으로 연기를 배운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토록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며 “진짜 배우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고 회상했습니다.
멜로 영화 ‘별아 내 가슴에’(1958)에서 여대생 미혜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1959)에서는 전쟁으로 약혼자를 잃은 안수미 역을 통해 배우 최무룡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장희빈’(1961)에서는 훗날 수많은 장희빈 캐릭터의 기준이 될 연기를 선보이며 사극에서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 제작사 ‘지미필름’ 설립, 현장에서 계속된 도전
1980년대 중반, 그는 단순히 배우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영화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티켓’(1985), ‘명자 아끼꼬 쏘냐’(1992)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명자 아끼꼬 쏘냐’는 그의 마지막 주연작으로 기록되며,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한국 영화 현장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행보를 보여줍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를 두고 “한국 영화의 산증인”, “진정한 한국 영화인”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세 번의 결혼, 눈치 보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
스크린 밖에서의 삶도 늘 화제를 모았습니다. 김지미는 영화계에서 ‘여장부’로 통할 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18세였던 1958년 감독 홍성기와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했고, 이후 당대 인기 배우였던 최무룡과 결혼·이혼을 겪었습니다. 이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최무룡이 남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이후에는 가수 나훈아와의 결혼 발표로 다시 한 번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약 6년 뒤인 1982년 사실혼 관계를 정리하며 결별했습니다. 1991년에는 심장 전문의 이종구 박사와 재혼했으나 2002년에 다시 이혼하며 세 번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러한 굴곡 많은 개인사로 인해, 그는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사랑과 결혼에 있어서도 자신의 선택을 따라간 인물로 기억됩니다.
🎞 은막의 여왕이 남긴 흔적
김지미는 수십 년간 한국 영화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해가는 여성상과 사회상을 스크린에 담아냈습니다. 트로이카 이전부터 1980년대까지 꾸준히 활약한 몇 안 되는 배우였고, 미모와 연기력, 그리고 자유로운 삶의 방식으로 하나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수백 편에 달하는 작품과 기록, 그리고 동시대를 함께한 관객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은막의 여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엔터 .가수 배우 연예인.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변요한·티파니 열애 인정…결혼 전제로 교제 중 (0) | 2025.12.13 |
|---|---|
| 조세호 조폭 연루설과 '아내 술자리 동석' 사진 논란 정리 (0) | 2025.12.12 |
| 원로배우 윤일봉 별세…향년 91세‘ 엄태웅 장인’ (1) | 2025.12.08 |
| 박나래, 방송 활동 중단 선언... "모든 게 제 불찰, 깊이 반성" (0) | 2025.12.08 |
| “소년범 조진웅, 생매장 시도 맞서야” 옹호론까지 등장한 이유 (0) | 2025.12.07 |